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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6개월 간의 회고록

by _Jay_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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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거의 6개월 동안 백수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퇴사 준비"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쓴 이후로 정말 오래간 만에 일상 글을 쓰게 되었는데, 당시 6개월 전으로 돌아가면 내 자신을 말리고 싶을 정도로 심적으로 정말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퇴사 전에 계획했던 것과 너무 많이 어긋나기도 했고,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할까.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어쩜 이렇게 긍정적으로 썼을까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사실 손목 재활과 직무를 아예 바꿔서 신입으로 지원할 목적으로 1년 정도를 생각하고 퇴사를 했기에, 한 동안은 맘 편히 쉬면서 놀아야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첫 세달은 재활 치료 때문에 병원을 왔다갔다 하고 손을 사용하면 안되기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못했다.

 

그리고 떨어져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슬슬 다시 돈을 벌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맘 편히 지낼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다행히 취업에 성공해서 다음주 부터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데, 회사를 다니면 이런 글을 올릴 시간도 없을테니 간단하게 6개월 간의 회고록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퇴사 한 두달 전부터 갑자기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별일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다가 통증이 너무 심해서 MRI를 찍어 보았다. 의사 쌤이 말하길 흔히 IT를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TFCC(삼각섬유연골 복합체) 파열 증상이 있다고 했다(대학원 + 회사의 합작품).

 

당시에는 수술할 정도는 아니였기에 퇴사 후 계속해서 재활 치료를 받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으나 백신을 맞고 다시 아프기 시작했는데, 백신의 부작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병원에서 별 이상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통증은 왠지 평생 가지고 살아야할 것 같다.

첫 세달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만 틀어박혀 지냈는데, 오히려 회사를 다닐 때보다도 돈이 더 많이 들었다. 특히 집에서 삼시세끼를 먹어야했고, 손을 못쓰다보니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먹어서 식비가 너무 많이 증가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그런데 그 중 20%는 배달비..).

 

거기다가 퇴사 후에 개인적으로 준비하려던 시험이 있었는데 손목 문제로 전혀 진행할 수 없게 되었고, 점점 통장 잔액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급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슬슬 취업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부터 생각했던 보안 컨설팅 직무로 커리어를 바꾸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사실 3년이라는 개발자 경력을 버리고 보안 컨설팅으로 직무를 옮기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다. 심지어 짧지 않은 경력이었기 때문에 컨설팅 직무로 면접을 볼 때마다 왜 굳이 연봉을 1~2천씩 낮춰가면서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내 전공이 보안 분야이기도 했고 악성코드 분석이라든지 취약점 분석과 같은 방향으로 연구를 했기 때문인데, 이전 회사를 다니면서도 손 놓지 않고 꾸준히 공부를 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높은 연봉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딴 마음을 먹고 있었던 걸 알았다면, 이전 회사에서는 나를 뽑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역을 해결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애초에 회사를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개발 직무 말고는 없었다.

 

일단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높은 연봉을 주는 곳으로 지원했었다. 심지어 입사 후 초기에 내가 맡은 업무가 기존 레퍼런스 제품 분석-설계-개발-테스트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워터폴 기반의 개발이었던데다가, VOC가 들어오면 원인 분석해서 이슈 처리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이 되고 나서는, 개발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취약점들을 찾아서 고치거나(흔히 시큐어코딩이라고 하는 부분), 개발된 제품에서 통신할 때 SSL이 적용되는지나 개인정보가 암호화되어 있는지 컴플라이언스 측면으로 보안성 검토를 하면서 개발 프로세스에 보안을 적용해 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때가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재밌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물론 이 작업들이 모두 업무 외적인.. 즉, RFP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던 일이었기 때문에 업무 성과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술경력서나 포트폴리오에 추가할만한 개인적인 성과로는 만족할 수 있었다.

3년차부터는 메일 보안 솔루션이나 CDR 솔루션을 개발해서 사내 시스템에 적용하겠다고 직접 나서서 본부에 컨펌을 받고 설계, 어느 정도 개발까지 했었는데 다른 사업을 진행한다고 기존 일정이 엎어져서 그 이후로는 시키는 것만 하면서 병역 복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사실 이전 회사에서는 보안을 중요하지 않게 보기도 했고,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하겠다라고 해도 경영진의 한마디면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거의 대기업 연봉을 받으면서 회사 생활도 자유로운 분위기인데도 퇴사하냐면서 배가 불렀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 돈을 받으면서 레거시 시스템에 가까운 제품들만 개발하다가, 내 인생도 레거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빠른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물론 퇴사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개발 직무로 커리어를 이어나갈 것인지, 보안 직무로 완전히 방향을 틀어서 새롭게 도전을 할지 이 사이에서 고민은 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정년 이후에도 일을 계속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지와,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무직이 AI로 대체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하는 일도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를 생각해 봤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개발자 붐이 불면서 어느 회사는 연봉을 파격적으로 2천만원 이상 올려주고, 흔히 말하는 네카라쿠배에서는 신입 연봉이 6천이 기본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여기는 이미 레드오션이니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겠다'라고 판단을 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코드나 로우코드 플랫폼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지지 않고서야 AI와 같은 기술에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라고 느꼈다.

지금 당장 좋은 기업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면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개발자를 하겠다고 공부를 시작한 것도 아닌데다, 개발을 하면서 의미를 찾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을 때 전혀 아니었기도 했고, 딱 어정쩡한 실력으로 회사다니다가 중간에 어쩔 수 없이 관리자 직급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

 

물론 대부분 연차가 쌓이면 PM으로 넘어간다지만, 제대로 된 실력도 없는 PM이 개발자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나는 3년 동안 개발에 필요한 알고리즘, 디자인 패턴을 깊게 공부한 것도 아니고, 개발에 적용될 수 있는 보안에 대해 더 관심있게 공부했기 때문에 개발자 커리어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던 상황도 있다.

또한 보안 직무 중에 컨설팅으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따로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회사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기도 했고 갑자기 회사에서 나가게 되더라도 프리랜서로 어느 정도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 쉴때는 푹 쉴 수 있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법으로 보장되는 라이센스를 가지고 제도권 안에서 일을 하자라는 것이다.

 

정년 이후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개발 분야로 치면 정보시스템 감리가 해당될 것이고, 보안 분야에서는 ISMS와 같은 보안 인증이 해당된다. 일단은 보안 컨설팅 직무에서 일을 하면서 ISMS 심사원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문적으로 심사를 하러 다닌다던지 아니면 보안 담당자로 이직을 한다던지, 한 가지 직무가 아닌 다양한 방면으로 일을 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하고 싶었다.

​물론 당연히 퇴사를 한 후 내가 생각한 계획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컨설팅 직무로 몇몇 기업에 연습 삼아 지원을 했었는데, 보안전문업체에서는 개발 경력을 가지고 이쪽 업계로 넘어오려는 것 자체를 좋게 보지 않는 것 같았고, 굳이 이쪽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항상 했었다.

 

나름 진행한 프로젝트가 많았기에 서류는 항상 합격했지만  최종 면접이나 1차 면접에서 번번히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은 자신감대로 떨어져서 경력을 살려 다시 개발 직무로 지원해야하나라는 생각도 했었고, 퇴사를 좀 더 신중히 결정해야 했나라는 기분도 들었다(이 글을 보는 분들은 퇴사를 신중히 하는걸로..).

사실 지금 같은 시국에서는 어디든 한 다리 걸쳐놓고 퇴사하는 것이 맞았는데, 과한 자신감 때문에 실수를 한게 아닌가 했지만, 손목 부상 때문에 도저히 업무를 진행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퇴사 후에 계속해서 보안 컨설팅과 관련된 공부를 해왔었다.

 

그리고 ISMS-P 인증이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데이터 3법과 관련한 가명처리, 마이데이터 사업 등 법률이나 컴플라이언스 부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었다. 계속 면접에 떨어지긴 했지만 그러다 결국에는 후순위로 생각했던 기업의 보안 컨설팅 직무에 신입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백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다음주 부터 회사에 나가게 된다.

참고로 지금 들어가는 회사가 후순위였다는 것은 회사의 인지도나 연봉 문제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아닌 이유가 컸다. 회사를 지원할 때 가장 우선순위로 둔 것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지정한 정보보호 전문업체면서, 체계가 잡혀 있는 중견 이상의 기업이었는데 이에 해당하는 곳은 몇 군데 없다.

 

구체적인 회사명을 나열하기는 어려워서 설명으로 대체하자면 V3를 만든 보안업체나 금융 IT전문 기업, 한국 1위 기업의 자회사면서 보안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대기업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연봉은 낮은 기업, 잠실에 있는 타워이름을 가진 대기업 계열사 정도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기업 타이틀을 단 기업에서 보안 컨설팅 직무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문제는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너무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집을 옮겨야 하나 싶은데 컨설팅 직무 특성상 출장이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다녀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원래 보안 컨설팅이라는 직무 자체가 고객사가 ISMS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의 보안이나 결함을 진단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을 한다. 다니게 된 회사의 장점은 모 기업의 여러 계열사가 있어서 다양한 환경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인데, 최근 계열사들이 시스템을 온프레미스에서 클라우드 환경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에 해당 환경에서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앞으로 공부해 나가야할 분야인 클라우드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위에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면서 좋게 포장했지만 이렇게 신입으로 지원하는 것이 올바른 전략인지는 알 수 없다. 3년이라는 경력을 냅두고 새로운 직무로 연봉을 낮추면서 늦은 나이에 신입으로 입사하는 것도 어느 정도 패널티를 감수한 것이다.

 

나름대로 최종 커리어를 위해 세운 계획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게 들어맞길 바래야 한다. 이번에도 두서 없이 글을 썼지만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기 위해 길게 글을 써보았다(회고록이라기 보단 한탄에 가까운..). 새 회사를 다니면서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면 다시 글을 남기도록 하겠다.

 


+++ 여담

6개월 간 백수 생활을 하면서 거의 집에서만 지냈는데,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했지만 유튜브를 가장 많이 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 리뷰를 가장 많이 봤는데, 예전부터 주변 친구들이나 커뮤니티에서 재밌다고 꼭 보라는 드라마가 몇 개 있었지만 모두 보기에는 너무 시간적인 압박이 강했기 때문에 시도할 엄두 조차 못했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에서 뜨는 트렌드가 드라마 또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리뷰나 시청자의 흥미를 끌만한 부분을 추려서 올리는 영상이었기 때문에, 풀영상으로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던 것을 유튜브에서 리뷰 영상을 보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결말 포함이 아닌 리뷰 영상의 경우, 감질맛 나게 중간에서 마무리되어 나머지를 따로 봐야한다는 것.. 거기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추천 영상으로 인해 새로운 드라마 리뷰 영상을 보게 되고, 또 다시 유튜브에서 다루지 않은 드라마 내용을 보고 다시 유튜브로 돌아와서 추천 영상을 보는.. 이런 무한 굴레에 빠져서 지냈다. 백수가 아니라면 할 수 없을 생활이었는데 다시 일을 시작하면 이 시절이 그리울 것 같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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